문방구

국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문방구가 나왔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이 문방구는 50대 후반 또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주변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은 이 문방구는 일주일 내내 문을 연다고 했다. 25년 전 가게를 인수한 문방구 사장은 손님과 매출이 줄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출연자들은 문방구 안에 있는 재고를 대신 판매하며 그를 도왔다. ‘착한일 주식회사’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나와 비슷한 또래에게 문방구는 익숙한 공간이다. 학용품과 수업 준비물은 물론이며, 수십가지의 불량식품을 팔았다. 심지어 파친코도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한 때 이 ‘가위바위보’ 게임에 빠져 문방구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게임을 이기면 또르르 나오는 동전은 돌이켜보면 ‘상품권’ 역할을 했다)

문방구는 시대 변화를 온몸으로 맞는 업종이다. 쿠팡은 로켓처럼 학용품을 현관문 앞으로 배달하고, 아이들에겐 ‘다이소’가 훌륭한 놀이터로 변했다. 전 세계 1위를 달리는 한국의 저출산은 잠재 고객마저 잃게 만들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압도적인 꼴지다.

문방구의 소멸은 지역에 따라 다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2021년 1만 5767개였던 전국 문방구 업체수1는 2023년 1만 5150개로 3.91% 줄었다.

가장 많이 줄어든 지역은 서울이다. 2021년 3209개에서 2023년 2871개로 10.5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서울 거주 인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수도권에서도 서울의 감소폭은 두드러진다. 인접 지역인 인천(-1.19%)과 경기(-1.52%)의 문방구 감소폭은 전국에서도 가장 적다. 학령 인구를 포함한 젊은 세대가 서울에서 인천, 경기로 빠져나간 결과가 아닐까 싶다.

반면 문방구가 늘어난 지역은 전국에서 딱 2곳이다. 세종시에선 143개였던 문방구 수가 152개로 도리어 늘었다. 인구가 약 1% 남짓 늘어나는 동안 문방구는 6.29% 늘었다. (세종시는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2위는 제주였다. 274개에서 276개로 2개 늘었다. 이는 다른 이유가 아닌가 싶다.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기 국내 관광객이 대거 제주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도 같은 업종으로 등록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유통 시장 변화가 문방구에 주는 충격은 지역별로 크게 다를 것 같진 않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쿠팡과 다이소가 커버하지 못하는 지역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 에도 대형 다이소는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문방구의 생사는 지역별로 극적이다. 저출산과 신도시 개발은 문방구를 죽이고 살린다. 고령화된 도시에선 문방구는 소멸하고, 신도시 아파트 상가에선 무인 문방구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1. 서적 및 문구용품 소매업 (단독사업체 기준) , 통계청 시도·산업·사업체구분별 사업체수, 종사자수(’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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